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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에게 어떤 학생이 물었다.

ㅡ인류 문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증거가 있나요?

미드는 말했다.

ㅡ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예요.

​이어서 설명했다.

ㅡ동물의 왕국에서 다리가 부러졌다면, 그는 죽어요. 종족으로부터도 버려질테고 약해졌다는 건 죽음을 의미하죠. 부러진 다리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어요. 하지만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었음을 나타내요. 누군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돕는 것. 그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지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생존 앞에 예술은 종종 무용함을 드러낸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할 때에 아름다움이 다 무어야. 당장 살고 봐야지. 본능만큼 강력한 성찰은 없다. 온 지구가 바이러스에 꼼짝 못하며 4차 산업 혁명에 들떴던 우리는 주저앉았다. 국가들은 자가 봉쇄했고 사람들은 강제 격리 됐다.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가 멈춘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맞딱뜨린 날들. 우리는 코와 입을 막은 채 서로를 경계하며 삶을 조심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마주쳤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름다운 이국의 소녀가 눈이 가리워진 채 손을 모으고 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구름 속에 고립되어 묶여 있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제3의 손들. 부드럽게 다가와 어루만진다. 놀라지 마. 괜찮아. 가만히 손을 내민다. 그림 속에 담긴 뜨거운 염원과 기도. '아! 미얀마' 전시였다. 레지나킴 작가의 그림 '함께'는 이 전시의 대표작이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 격려하며 힘을 보태기 위해 예술가들이 모였다. 단순한 앙가쥬망을 넘어 전시 작품들은 기증되고 수익금은 미얀마로 보내진다고 한다.

그림을 들여다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본 문장이 떠올랐다. 역사의 여신은 장님이라는. 마치 지금 이 그림처럼. 역사는 카오스라서 어떤 선택도 꼭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만만치않은 역사의 풍랑을 겪었다. 고통 속에서 성장했다지만 치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역사도 많았다. 지금 미얀마의 카오스도 그렇다. 선량한 시민이 죽어나가고 언론은 탄압되고 연일 가슴 아픈 뉴스가 터진다.

그러자 오래 된 문명 속 유대와 연대가 뜨겁게 튀어나왔다. 세계 각국에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하며 함께했다. 미얀마는 지금 정강이뼈 어딘가 부러졌는지 모른다. 절뚝이며 위태롭게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는 기꺼이 손을 내민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림 속에 섬세하게 그려 넣은 손들은 간절한 소망이다. 함께 하겠다는 의지다. 잘 될거라는 기도다. 그림 한 점에 잊고 있었던 마음의 온기가 돌아온다. 눈 앞의 생에 급급해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살아왔구나 생각도 든다. 예술의 가장 유용한 가치가 눈 앞에서 발견된다. 선한 영향력. 인류 문명은 계속 진화 중이다.

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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